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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도 필리핀 어학연수 후기(권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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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형연
조회 7,009회 작성일 12-04-1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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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학년 때는 학교 기숙사에서 살다가 이학년 때는 포항 집에서 통학을 하다가 삼학년이 되면서 처음 경북 학숙에 살게 된 나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학숙에서 산 지 두 학기가 다 되어 갈 무렵, 룸메를 포함해 학숙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크고 작은 장학금을 받는 걸 보면서 처음엔 그저 작은 질투심이 생겼다. 그래서 나도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큰 기대 없이 ESPT 시험 결과에 의해 선발되는 필리핀 어학연수를 신청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운이 좋았던 건지, 시내에서 친구들을 만나다가도 영어 회화 시간에 맞춰서 헐레벌떡 들어온 보람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2학기 어학연수 장학생에 선발되었고 그렇게 나는 필리핀에 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겨울 방학 때 친구와 생에 첫 해외여행을 가려고 이미 비행기 가예약과 호텔 예약까지 끝마쳐 놓은 상태인데다가,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갈지 말지 많이 고민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내가 필리핀을 가지 않는 바보 같은 결정을  내렸다면 지금쯤 어땠을 지 눈앞이 캄캄하다.
그 전에 학숙에서 한 번의 OT가 있긴 했었지만, 나 빼고 다들 이미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나를 제외하고는 이학년, 일학년의 동생들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어떻게 이 사람들과 친해지고 어떻게 한 달을 보낼 수 있을지 정말 막막했다.
그렇게 걱정에 걱정을 하며 짧은 겨울 방학 며칠을 누린 뒤 2012년 1월 6일 밤 열두시에  동대구역에서 어색한 사람들 아홉 명을 만났다.
기념사진 촬영을 한 뒤, 우리는 인천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고 나는 그 전 날 잠도 거의 자지 못한 상태였지만 너무 떨리고 초조한 마음에 또 버스에서 잠을 설치며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에서 마닐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아주 긴 대기 시간 끝에 또 마닐라에서 일로일로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서 지프니를 타고 또 한참을 간 뒤 그날 밤이 되어서야 우리는 어학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 방을 배정받고, 방 안에 들어간 순간 정말 막막했다.
샤워를 해도 한 것 같지 않은 찝찝함과 함께 방 안에는 가끔 도마뱀과 개미들이 출몰하기 일쑤였다. 또 욕조 안에 붙어있는 샤워기는 분리가 되지 않아서, 꼭 욕조 안에 들어가서  씻어야만 했는데, 짧은 내 다리에 비해 욕조가 너무 높아서 씻으러 들어가고 나오면서 수없이 부딪혀 한 달 내내 내 다리는 멍투성이였기 때문에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었다.
처음 마닐라에서부터 음식은 입에 맞지도 않았고, 필리핀 특유의 냄새 때문에 하루에서  이틀정도는 음식을 거의 남겼던 것 같다. 나중에는 친구들 것도 뺏어먹고 두 번 세 번 배식 받기도하고, 음식을 배식해주는 필리핀 분들께 "more more please"라며 말도 안 되는 영어로 애교를 부리게 됐지만 말이다.
이틀이 지나고 삼일 째 되면서 나머지 아이들과도 친해졌고, 필리핀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도 하고 수업역시 너무 재미있었다.
1교시는 아침 8시부터 시작되고 12시까지 오전수업이 끝난 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오후 수업을 하고, 한 시간 휴식 뒤 6시부터 저녁 식사 후 밤 8시부터 10시  까지는 의무 자율 학습 시간이었다.
학숙 열 명이 모두 같이 듣는 토익 RC 수업과 토익 LC 수업 그리고 conversation 수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각자 배정된 튜터와 함께 이루어지는 1:1 수업이었다.
토익 RC수업은 영어로 문법 설명을 해주는 거라 머무는 한 달 내내 나에게 너무 고욕이었고, 이해하기 힘든 수업이었지만 아침 형 인간인 나로서는 가장 집중이 잘 되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같이 갔던 친구들끼리 speaking이나 conversation이 아닌 토익 수업은 아무래도 현지인들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에, 차라리 한국에서 듣는 어학원 수업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1:1로 이루어지는 수업이 가장 좋았는데, 다른 사람들과 상관없이 오로지 튜터 한명과 나만 프리토킹도 하고, 내 수준에 맞춰서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내가 영어로 어떤 것을 말하면 튜터들이 바로바로 문법이나 어휘 지적을 해주곤 했기 때문에, 나는 이 시간을 통해서 영어 말하기 실력이 조금이나마 향상 되었다고 생각한다.
튜터들에게 프리토킹을 잘한 다는 칭찬도 듣고, 도저히 불가능 할 것 만 같았는데 나의 짧은 영어실력으로도 그 사람들에게 나의 감정이 전달되고, 서로 자유롭게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그저 벅차고 신기했다.
매일 아침 여섯시 반에 일어나야했고, 오후 열시까지였던 의무 자율학습 시간보다 늦게까지 더 공부 할 때도 많았기 때문에 항상 피곤했지만, 매일 매일 그날 주어지는 토픽에 따라 writing과제나 영어 일기, 일곱 명의 튜터 들이 내주는 숙제는 열심히 해가려고 노력했다.
특히 writing과제나 영어 일기 부분에서는 초반에 나의 Buddy tutor였던 Anthony에게 항상 문법과 작문 실력이 같이 온 다른 학숙 아이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서 많이 속상해 했었다.
그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이학년 동생도 있었기 때문에 더 속상하기도 했었지만 그 동생에게 자습시간에 찾아가서 내 일기나 토픽을 보여주면서 질문도 하고 사전도 찾아가면서  조금씩 개선해 가려고 노력한 결과 수정 받을 부분이 눈에 띄게 줄었고, 결국은 Anthony에게 칭찬도 받아냈다.
튜터들은 거의 나보다 한 살, 많아도 두 살 정도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그 뒤부터는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고, 수업시간 외에도 내가 튜터들 방에 놀러가서 장난도 치고 얘기도 많이 나눴었다.
토익시험은 첫날 도착해서 한 번치고, 돌아 올 때 쯤 또 한 번 쳤었고, 그밖에 writing시험과 영어 인터뷰 시험도 쳤었다.
토익에 너무 자신이 없었던 나였지만, 두 시간동안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했었고, 시간이 부족해서 문제를 못 푸는 일은 없게 하자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영어 인터뷰 시험은 세 명의 튜터들이 각자 주제에 따라 질문을 던지면 영어로 답변하고, 그 답변이 문법이나 발음, 어휘에 맞는지 심사하는 시험이었는데, 나는 영어 구사력은 양호하지만 한국식 억양이 강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수업만 듣기에도 피곤하고 벅찬 날들이라, 열 명 모두 수업과  숙제에 충실했었고,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는 어학원 내 풀장에서 수영을 하거나 근교로 나가서 자유 시간을 보냈었다.
첫 주말은 그저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한국 C&C어학원 이사님의 안내와 한국인 매니저  언니의 안내에 따라 미아가오 성당이나 sm몰을 두리번거리며 졸졸 따라다니곤 했는데,  점점 필리핀 생활에 적응을 하고 난 뒤부터는 월요일이 되도 수업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지고, 그저 주말만 기다리게 되서 조금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학연수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관리하고 기회를 유익하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보다 넓은 시야를 통해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반면에, 한국 생활에 비해 자의로든 타의로든 조이고 억압하는 것들이 다소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기에, 적절한 자유가 지나치면 안주하는 나태함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몸소 느꼈던 순간이었다.
수업시간에 튜터들과 쌓은 추억들도 물론 많았고, 가시적인 결과물이든 비가시적인 결과물이든 영어실력도 조금이나마 향상되었겠지만, 나는 주말이나 그 외의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가장 소중했고, 그 시간들을 통해 배운 것들이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권미진’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동안 나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면서 조급하게 살았었고, 내가 처한 상황에 급급해서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을 뿐더러, 내 잘못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가 특기였던 부정적인 아이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필리핀에서 ‘Crystal'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동안 나는 내 자신도 놀랄  정도로 매일 매일 깔깔거리면서 웃고 다녔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수업시간에 참여했었다. 그 밖에도 필리핀 튜터들과 한국인 매니저 언니와도 급속도로 친해져서 수업 시간 외에  개인적인 시간들을 함께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던 점이 가장 행복하고 좋았다.
영어실력 향상을 목적으로 방문했던 필리핀이었지만, 나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항상  서로를 배려해 줄 줄 알았던 친구들, 그리고 필리핀 튜터들과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면서 결코 돈 주고는 살 수 없을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고 왔다.
정말 창피하고 바보 같지만, 한 달이 끝나고 마지막 presentation 발표 날 튜터들과 선물을 주고받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한국에 돌아오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 펑펑 울기도 했었다.
지금생각해보면 단지 그 사람들의 직업이 튜터이고, 나는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에게 베풀었던 친절과 웃음들이 어학원 내에서만 유효한 그들의 의무였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슈퍼에서 계산을 할 때, 거스름돈을 내어주는데도 한참이 걸리던 그 사람들이  짜증이 날 정도로 답답했지만 길거리를 지날 때, 지프니 안에서도 항상 웃으면서 먼저 손을 흔들어주던 사람들의 여유와 순수한 웃음이 너무 부러웠다.
그들의 행동이 튜터로서의 암묵적인 의무였거나 외국인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과 선망 때문이었던 아니었던 간에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그 마인드 자체가 오랫동안 내 가슴 한 켠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sm몰에서 우리의 서툰 영어 때문에, 뒷사람들의 대기 줄이 저만큼 길어지고, 업무에 작은 지장까지 주었는데도 다른 손님 역시 웃으면서 우리를 기다려주었고, 튜터들과는 현저히  다른 사람들의 영어 발음을 잘 못 알아들어서 몇 번이고 묻던 나에게 표정하나 찡그리지 않고 몇 번이나 같은 대답을 반복해주면서 배려하던 모습에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덕분에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전 보다 더 많이 웃을 수 있고, 조금이나마 나보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도 알게 된 긍정적인 아이가 된 것 같다.
그 밖에 초대형 피자를 먹으러 가고, 일 년에 한 번 뿐이라는 디나경 축제를 보고, 우리끼리 계획을 짜서 1박 2일 일정으로 보라카이에 가서 무서움을 꼭 참고 스노클링도 하고, sunset도 보고 수산물 시장에서 직접 흥정하며 랍스타와 새우를 사가서 식당에서 먹고, 필리핀의 밤 문화도 체험하고, 태국 음식점도 가고, 필리핀 음식점도 가고, 망이나살에 한동안 꽂혀서 몇 번 씩 망이나살과 할로 할로를 먹으러 갔던 기억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수업 중에는 누구보다 strict하게 강의하고, 마지막 시간에는 우리에게 따뜻한 웃음까지 줬었던 Jayn, 항상 재치 있는 표정과 언변으로 화기애애한 conversation 수업을 유도했던 패션 리더 Leemuel, 나에게 팔찌와 목걸이, 편지 선물도 주고 나와 비밀 얘기나 개인적인 관심사나  고민들을 가장 많이 주고받았던 Sheila, 아빠라고 부르라며 분홍색 풍선에 메시지도 적어주고, 마지막 presentation 발표 때 가장 많이 도와주고, 평소에도 꼼꼼하게 작문 수정을 도와줬던 내 Buddy tutor Anthony, 마지막 수업 때 케이크를 사와서 우리와 과자파티를 함께하고, 항상 쾌활했던 모습이 보기 좋았던 Dang,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았지만 항상 어른스럽고  경제관념이 참 뚜렷했고, 나에게 늘 tail sound를 지적해주던, 엽기적인 발톱 깎이와 팔찌 두 개와 필리핀 귤 한 봉지를 선물로 준 Jan, 오바마를 닮은 외모에 항상 친절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나와 다른 아이들이 가장 많이 좋아했고, 나에게 한국에 돌아가서도 나쁜 꿈 말고 자기 꿈을 꾸라며 드림 캐쳐를 선물로 준 Albert, 일하는데 귀찮았을 텐데도 졸졸  따라다녔던 나에게 항상 친 언니처럼 대해주고 같이 밤새 수다도 떨고,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깜짝 편지로 날 또 한 번 울렸던 한국인 매니저 Sophia 언니.
대부분 페이스 북 친구 등록을 해서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지만, 정말 모두 다 잊지 못할 것 같다.
남자 대표, 여자 대표라는 책임감 때문에, 더운 날씨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나머지 인원까지 일일이 챙겨야했던 같이 갔던 오빠와 친구에게도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영어 실력 외에도 너무 벅차서 내가 다 떠안을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것을 배우고 얻게 해준 경북 학숙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다른 사람들 보다 학숙에서 지냈던 기간은 짧은 편이었지만, 그 짧은 기간 안에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얻은 것 같아서 경북학숙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부터가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내년에 또 나와 같이 어학연수의 기회를 얻게 될 후배님들이 있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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